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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암 나철선생 생가
보성문화원 2006.07.29
- 위치 : 보성군 벌교읍 칠동리 115 금곡마을

- 현상 : 先生은 1864年에 옛 樂安郡인 寶城郡 筏橋邑 尺嶺里 金谷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學業에 熱中하여 副正字를 역임하였으며 露日戰爭이 日本에 有利하게 전개되자 國家의 危險을 豫想, 李沂, 吳基鎬 등과 같이 1905年 7月에 渡日하여 東京에서 日本朝野에 韓國獨立을 力說하고 다시 渡美하여 루스벨트 大統領에게 韓國獨立에 有利하게 露日戰爭이 結末되도록 호소했다.

日本活動 中 日本 首相과 外務大臣에게 陳情書를 발송, 乙巳條約의 不可를 力說했으나 答이 없자 日本天皇에게 上疏文도 냈다.(내용생략) 歸國 후 乙巳條約 체결 주역인 李完用, 朴齊純, 權重顯, 李根澤, 李址鎔 등을 제거하고자 1907年 2月 28日 아침, 박제순, 이지용 집에 폭발장치를 한 선물을 보냈으나 失敗하였다. 이에 五賊을 同時에 제거하기 위해 동지를 糾合, 거사를 도모하였으나 일본의 주구인 박용화만 살해하고 실패하였다. 이 일로 10년 유배형을 선고받았으나 같은 해인 1907年 유배된 智島에서 12月 29日 석방되었다.

선생은 救國運動이 몇몇의 힘만으로 성공할 수 없음을 느끼고 同志들과 함께 1909年 10月 15日 重光節에 “檀君大皇祖神位”를 모시고 檀君敎佈名書를 公布하고 敎門을 열었다.

檀君敎는 1年만에 2萬 名이 모였고 1910年에는 敎名을 “大宗敎”로 改稱한 뒤 1914年에 大宗敎 本司를 間島로 移設하여 滿洲까지 포교하다 1916年 日本의 暴力에 抗拒하여 黃海道 九月山 三聖祠에서 自決하였다.

寶城郡民들은 先生의 護國精神을 기리기 爲해 出生地 마을 앞에 간단한 榜石을 1990年 3月 1日 建立하였으나 초라해 보는 이의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
채동선선생 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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