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치 : 보성군 벌교읍 벌교리 401 세망마을
벌교읍 벌교공원에 위치한 기념비는 이 고장이 낳은 한국음악계에서 민족음악의 선구자로서 큰 업적과 예술적 생애를 추앙하며 순수한 애향운동을 기리고자 음악인과 향인들이 뜻을 같이하여 사업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1989년에 기념비를 세우고 해마다 음악행사를 선생의 비 앞에서 치르고 있다.
채동선선생은 1901년 보성군 벌교읍 벌교리에서 채중현의 장남으로 태어나 15세 때 서울 경기보교에 입학, 민족의식을 키웠다.
1919년 3.1운동에 적극가담 신변에 위험을 느껴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 대에 입학 영문학을 전공하며 음악수업을 했다.
1924년에 독일유학 시 창작과 연주 활동 중 조국산천을 그리며 틈틈이 적어 놓았던 고향, 향수, 앞천 등의 기악곡을 만들었다.
태평양전쟁이 일어나자 고향재산을 정리 소유리에 은둔, “민요채보”에 전념하여 “육자배기”에 정열을 기울였으며 “판소리”에도 손대어 “춘향가” 12마당의 채보를 완료하고 “뱃노래” 등도 독창과 합창곡으로 편곡 그 위에 관현악 반주까지 만들었다.
광복이 되자 국립 교향악단과 합창단의 발족을 위해 동분서주하면서도 “조국”, “독립축전곡”, “한강수” 등 애국적인 곡을 만들고 국경일에 부를 노래가 없음을 아시고 “개천절”, “삼일절”, “선열추모가” 등 노래를 만들어 각 학교에 보급하였다.
6.25 때 부산 피신생활의 고달픔으로 병고에 시달리다 1953년 2월 2일 53세로 운명하셨다.
선생이 남긴 작품 100여 편은 깊은 서정성과 선율의 감동, 강한 민족성으로 오늘날 높이 평가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음악인의 귀감이 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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